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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실버] (21) 해군소설 쓴 해양작가 천금성
2006/04/18 00:00
입력 조회수 : 848
해양작가 천금성(63). 그는 거친 바다를 닮았다. 그의 인생에서 바다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타고난 바다 사나이. 심지어 강약으로 리듬을 타면서 그의 입을 통해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투까지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거친 파도를 연상시킨다.
환갑지난 영감작가지만 어느 누가 보더라도 나이답지 않게 그가 한없이 젊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해양 작품을 줄기차게 써온 그가 해양 문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또 하나의 야심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해군군함을 1년이나 타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본격 해군소설 ‘가블린의 바다’를 펴낸 것이다.
조로(早老)현상이 많은 한국 문학계에서 60살이 넘은 소설가가 해군소설을 써보겠다고 젊은 해군들 사이에 끼어서 1년 동안이나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누구인가.
1966년 서울대 농대 임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연히 산으로 올라갈 것으로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바다로 뛰어들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바다에 대한 신비가 너무도 가슴을 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바다가 그를 불렀다.
절개의 고향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거기서 과수원도 하고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농대에 들어갔으나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바다에 대한 도전의지가 그의 인생항로를 확 바꿔 버린 것이다.
1966년 잠시 지방잡지사의 기자로 근무했던 그는 ‘노인과 바다’의 신선한 충격을 떨쳐낼 수 없어 마침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설립한 한국 원양어업훈련소에서 단기적으로 항해사를 양성한다는 광고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소원서를 제출하였다. 전혀 자격이 불충분한데도 불구하고 1등으로 합격함으로써 험난한 뱃사람의 길로 들어섰다.
1년의 훈련기간 동안 치러진 학과시험에서 전학과에 걸쳐 내리 100점 만점을 얻음으로써 유엔 대표부로부터 교수요원 임명 제의를 받았으나 뿌리치고 해양대와 수산대 출신들로 가득한 원양어선의 말단 항해사로 인도양으로 출어했다. 그 때가 1968년 1월의 일이었다.
선장을 배출하는 학과(예를 들어 항해학과)가 없는 서울대학교 출신 선장 제 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난생처음 광활하고 짙게 푸르른 인도양 한복판에 당도한 그는 바다라는 대자연의 냉엄함과 위대함에 주눅이 들었으나 6개월 정도 항해를 하자 점점 바다가 여성처럼 부드럽고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게 다가왔다. “아! 바다는 내 것이다!” 그가 바다 정복에 나서면서 부르짖은 첫마디였다.
인도양 항해 중 말단 항해사인 그는 매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가 당직시간이었는데 어둠에 묻힌 바다에 비친 별빛을 내려다보면서, 혹은 물결에서 명멸하는 야광충들을 보면서 “아하! 바다는 살아있구나!” 그렇게 전율하면서 그 느낌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그 메모를 엮은 한편의 단편소설을 탈고하였는데 그 제목이 ‘해발 0미터’를 의미하는 ‘영 해발 부근(零 海拔 附近)’이었다.
그는 그 작품의 완성도에 자신감을 가지고 권투선수 홍수환이 ‘어머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라디오에서 울먹인 바로 그 현장인 남아프리카의 ‘더반’이라는 항구에 입항하자마자 그 작품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소감까지 첨부하여 응모, 당당히 당선됐다.
당시의 최종심사위원은 김동리와 황순원 선생이었는데 심사평에서 ‘우리 한국 문단으로서는 최초로 해양작가를 보유하게 되었다’면서 흥분했다고 한다.
해양작품은 헤밍웨이나 ‘백경’을 쓴 멜빌이나 또 ‘로드 짐’을 쓴 ‘콘래드’처럼 선원 혹은 선장으로서의 체험이 없고서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1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작품목록이 어떠할지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그는 원양어선 선장으로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던 1978년 첫 소설집으로 ‘허무의 바다’를 낸 이후로 지금까지 ‘은빛 갈매기’ ‘표류도’ ‘바다의 끝’ ‘지금은 항해중’ ‘남지나해의 끝’ ‘이상한 바다’ ‘외로운 코파맨’ ‘시지푸스의 바다’ ‘인간의 욕망’ 등 줄기차게 해양작품을 써왔다.
그리고 이번에 본격 해군소설 ‘가블린의 바다’를 펴냄으로써 그는 비로소 우리문단만이 아닌 세계문학사를 통틀어 해양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명실공한 해양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25살 때 처음으로 배를 탄 그는 78년까지 햇수로 꼭 12년을 탔다. 처음에는 2등 항해사로 나갔고 2등 항해사를 마치고 오자마자 능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선장으로 승진했다.
2년 만에 선장이 된 그는 그때부터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등의 원양어장을 찾아 마음껏 항해하면서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그 작품이 이루어졌다.
78년 하선을 하게 된 동기는 그가 집필한 소설을 묶은 창작집 ‘허무의 바다’ 출간을 위해서였는데, 느닷없이 경향신문에서 본격 해양소설을 신문에 연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다음해인 79년 1월1일자부터 본격해양소설 ‘표류도’를 연재하느라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사태’가 터졌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그 해에 전두환의 전기(황강에서 북악까지) 집필을 의뢰해 옴으로써 그는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영원히 하선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바다를 멀리 떠난 그에게 더 이상 해양소설이 나오지 않을 것은 너무도 명확한 일이 아닌가. 그 공백이 무려 10년이라!
바다를 항해하고 있어야 될 해양작가가 육지에 좌초가 된 처지이니 그에게 무슨 삶의 의미가 있었겠는가. 술도 많이 먹었다. 요즘의 서울역 지하도를 방황하는 노숙자에 진배없는 처지였다고 작가는 눈물을 글썽이며 회고한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 그게 그의 염원이었지만 그를 선장으로 받아주는 선박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오랜 하선 생활로 그의 선장 자격증은 이미 휴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바다로 나가야 된다는 욕망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궁리 끝에 당시 동원산업 김재철(現 대한무역협회장)회장을 찾아가 “다시 해양소설을 써야겠으니 말단어부로라도 제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다. 그게 받아들여져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십수 년만의 태평양 항해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 항해를 계기로 그는 다시 해양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바다로 나가지 않고 육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그로서는 단 한 줄의 바다 묘사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의 필생의 역작인 본격 해군소설 ‘가블린의 바다’가 나온 것이다.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가블린의 바다’는 어떤 내용인가. 그는 대학 재학시절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사병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십수 년의 선장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 특히 구축함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완벽한 해양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해군의 함상생활과 그 내면세계를 써야 한다고 굳게 믿어온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해군 본부에 승함을 정중히 요청, 흔쾌한 허락을 얻어냄으로써 이 작품의 탄생이 가능하였다.
그는 우리 해군이 나아가야할 바, 우리 해군의 소망이 무엇인가, 그리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남지나해와 태평양 등 세계의 바다를 외면하고선 대한민국은 결코 존립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해양 전략 관점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또한 소설 ‘가블린의 바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해군은 태평양에서도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대양해군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해군 사랑과 함께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군이야말로 가장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우리의 아들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해군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그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소설 제목에 나오는 ‘가블린’은 히브리어로 악마 혹은 마귀라는 뜻이다. 우리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이순신함이 일본 미국 중국 등 열강 해군이 판을 치는 악마의 바다를 비록 전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제패함으로써 한국 해군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 그의 집필의도다.
오랜 항해 생활로 그는 결혼도 늦게 했다. 이제 겨우 두 아이(아들, 딸)가 대학 졸업을 하였으나 혼사걱정이 대단하다.
하선하고 나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하기 위하여 본가(서울)를 떠나 객지에서 ‘나홀로’ 생활을 했다. 취재 및 자료 수집의 편의를 위하여 서울에 있는 집을 떠나 진해 해군기지 및 해군 3함대 사령부와 가까운 부산에서 2년 넘도록 이산가족 신세로 지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그는 탈고 원고를 해군본부에 보내어 최종 감수과정을 거쳤는데 미사일 용어 두 개가 틀렸다고 지적되었을 만큼 완벽했다.
함상생활을 하면서 그는 함상 예절을 철저히 지켰다. 함장에 대해서도 그는 부하 장교처럼 행동해야 되고, 군인과 똑같은 일과시간을 지켜야 되고, 집합구령이 떨어지면, 그도 대열의 후미에 서서 똑같은 훈시를 듣거나 경례를 붙이는 등 철저하게 함 승조원의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함상생활을 하는 동안 20대 초반의 수병들에게조차도 친밀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스스로 먼저 해군 구호인 ‘필승!’을 하루에 3백번 넘게 외치고 다녔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노력 덕분에 해군 총원으로부터 감동을 얻은 나머지 그가 탄 해군 주력함 ‘을지문덕함’ ‘양만춘함’ ‘부산함’ ‘화천함’ ‘나대용함’ 등의 함장으로부터 ‘명예함장’ 내지는 ‘명예승조원’ 등의 우대를 받았다.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에는 (2002년 10월22일) 장정길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영광스러운 ‘명예해군’ 추대를 받았다.
1년 동안 그렇게 함장을 비롯한 300명의 전 승조원들과 유일한 민간인으로써 호흡을 함께 함으로써 나중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에는 오히려 함장으로부터 ‘큰 형님’으로 예우를 받기에 이르렀다.
해군소설을 쓰겠다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는 강인한 사람으로 그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내친김에 다시 한번 군함 항해의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해군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육지에 나와서 살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전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육지여, 제발 나를 부르지 말아다오. 난 바다가 미치도록 좋답니다.” 라고 넋두리가 흘러나왔다.
거친 바다와 벗하고 살면서 줄기차게 해양작품을 쓰다보니 그는 어느새 거친 바다를 닮아 있었다. 몸도 마음도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투까지도…
타고난 바다 사나이 천금성. 그는 앞으로도 바다가 부르면 언제라도 다시 바다로 튀어나갈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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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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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6월 15일 11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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