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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21 그렇게 두 달이 더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다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겉봉에 쓰여진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발견한 순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진석씨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 아버지의 노여움도 많이 가라앉았고요. 하지만 아직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에요. 아버지의 허락이 없는 외출은 여전히 금지되어있고, 전화기는 케이스에 넣고 잠가서 받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지요. 하긴 전화기를 열어두었어도 진석씨께 전화를 드릴 수는 없었을 거예요. 진석씨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었나봐요. 저 참 바보 같죠? 진석씨는 다인을 벌써 잊었을 텐데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진석씨는 모자라기만 한 저를 따듯하게 대해주셨던 분이니까요. 참, 한 달 전에 맞선을 보았어요. 아버지께서 반 강제로 끌고 나가셨죠. 하지만 저는 결혼 하고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 상대방 남자는 제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다음날 다시 만나자고 하더군요. 저는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덜컥 승낙하시고 말았어요. 어쩔 수 없이 또 나갔지요. 그 뒤로 매일이에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를 찾아오지요. 잠시 후면 또 찾아올텐데 오늘은 웃는 얼굴로 만나주어야겠어요. 맛난 음식을 사주면 즐겁게 먹어주기도 해야겠고요.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던데 저 같은 여자 때문에 계속 애태우게 하는 게 왠지 미안해서요.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에게 시집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자그마한 옷가게를 하는 사람인데, 벌이가 제법 괜찮아서 아버지가 꽤나 마음에 들어하시더군요. 저는... 글쎄요. 제가 무슨 자격이 있어야지요. 만약 시집을 가게 되면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헌신해야겠지요. 이런,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곳으로 흘러갔나요? 사실은 진석씨에게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어서 펜을 들은 것이었는데 제 얘기만 한참 떠들었네요. 진석씨는 어떠세요? 저 대신 새로운 사람이 왔을 텐데, 마음에 드시나요? 물론 저보다야 낳은 여자를 고르셨겠지만, 솔직히 조금은 걱정이 되네요. 진석씨 입맛은 은근히 까다로워서 맞추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옷 입는 것도 많이 가리잖아요. 속옷은 항상 하얀색만 입으시니 매번 삶아야 하고, 즐겨 입으시는 와이셔츠 세 벌과 바지 두 벌 중 하나씩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다려져 있어야 하고... 후훗... 제가 주제넘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그 정도쯤이야 어떤 여자든 잘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에요. 자꾸 이상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이만 줄여야 겠네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부탁하고요. 첫 번째 부탁은, 정말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제가 두고 온 짐들을 보내 주십사 하는 거예요. 만약 정리하기가 힘드시면 그냥 버리셔도 상관없지만 한가지만큼은 꼭 보내주셨으면 해요. 진석씨가 사주셨던 선물들 있잖아요. 그 중에서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답지만 너무 비싼 것이니 욕심내지 않겠어요. 하지만 머리띠 정도는 부쳐주실 수 있겠지요? 몇 달 동안 함께 한 정리로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시라 믿어요. 그리고 두 번째 부탁은... 가끔은 제 생각도 한번씩 해달라는 거예요. 저도 가끔은 서울쪽을 바라보며 진석씨 생각을 할게요. 긴 시간도 아니었고, 마음으로 교감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제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거든요. 아마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더라도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쉽게 잊지는 못할 거예요. 그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라도 어쩔 수가 없군요.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억지로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고싶은 말은 아직 많지만 이제 그만 이별을 고할게요. 진석씨, 항상 행복하시고 언젠가는 좋은 신부감 만나서 결혼하시길 빌겠어요. 그럼... 먼 곳에서 다인 올림. 편지에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다인은 이미 맞선 본 사내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느낌이다. 그렇다면 내 감정을 알릴 기회는 영원히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알려야 하는 것일까? 한참이나 생각한 뒤에 내린 결론은 마음속에 묻어두자는 것이었다. 백산 수정일 2003년 05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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