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7.29.04:47 |

◇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19

 

감정을 정리하는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동안 그녀에게선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고, 나의 결론은 사랑으로 귀결됐다. 어쩌면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었던 것이 내 감정을 정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흘 내내 전화통을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만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정말 우스운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다니...

그런데 다인은 어째서 전화가 없는 것일까? 장례는 벌써 끝났을 텐데. 혹시 집에 전화가 없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많이 발전했다고 해도 전 가정에 전화가 보급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다인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올 정도라면 그리 잘사는 가정도 아닐 테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자꾸 위안해봐도 서운한 감정은 떨칠 수 없다.

전화가 오면 네가 좋아진 것 같다고, 그러니 어서 돌아오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좀 더 기다려 봐야겠다. 저녁쯤이면 전화가 올지도 모르니까.

밤이 지나서 아침이 되고, 다시 밤이 지나서 아침이 되기를 네 번이나 반복했다. 그런데도 다인에게선 전화가 없다. 이제 그녀는 다시 안 오는 것일까?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인은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한 말을 어길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눈길은 자꾸 전화통을 바라보고 내 귀는 시계의 초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심리 상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하다 못해 처음 쓴 원고를 출판사에 건네주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릴 때도 이렇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다인이란 이름만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초조함이 온 몸을 옥죄어 온다. 이런 것인가? 사랑이란 것이, 그리움이란 것이...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써온 소설들은 모두 거짓말이다. 내가 쓴 사랑도, 그리움도, 모두가 거짓말이다. 사랑이란 것도, 그리움이란 것도 이제야 깨달았으니까.

공허함이 밀려든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깨져나간다. 그렇게 깨져버린 사고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온통 휘젓는 가운데 언젠가 만났던 잡지사 기자의 말이 떠오른다.

-김 작가께서는 원래 아름다운 사랑을 주요 테마로 삼아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요즘은 비정상적인 사랑만 다루시지요? 변태적이고 광란적인 섹스라든가 죽음을 동반하는 그런 부류의 사랑 말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원래부터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저 독자를 유혹하기 위해 유려한 단어로 말장난을 했던 것인데, 아무도 그걸 몰라보았을 뿐이다.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겠지...

그러나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사랑이라 불릴 수 있는 얘기들을 말이다. 그것을 다인이 보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딱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예감이 든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텅 빈 거실이 점점 넓어지는 기분이다. 이대로는 오늘도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진마담과 술이라도 한 잔 마셔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어서는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항상 그만하게 울리는 전화벨이건만 오늘 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아 들었다.

"네, 김진석 입니다."

-저............ 다인이에요."

"다인? 지금 어디야?"

-죄송해요. 아직 중국이에요.

"대체 언제 오려고? 아, 아니... 동생 장례는 잘 치렀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반응이 튀어나와 얼른 말을 바꾸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네. 장례는 잘 치렀어요. 그런데...

한동안 머뭇거리며 말을 못하고 있던 다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못 나갈 것 같아요...

"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놀라움 때문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백산

 

수정일 2003년 05월10일
[ 피플코리아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대한민국 대표 인물신문 - 피플코리아(www.peoplekorea.co.kr) - copyright ⓒ 피플코리아.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피플코리아(peoplekorea.co.kr) | 서울시 정기간행물 등록: 서울특별시 아 01152호
    서울특별시 강서로 초원로 14길 1-6 나동 201호  | 대표전화 : 02-363-5521
    등록일: 2010년 2월 22일 Copyright ⓒ 2009 피플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대표 겸 발행인 : 이부영 | 편집국장: 장민
    피플코리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