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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44) 이야기 둘 (16)
2006/02/23 00:00
입력 조회수 : 701
◇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16
진마담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 해보니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빨간 스웨터에게 했던 훈계만 해도 그렇다. 내가 언제부터 그런 말을 했다고...
진마담의 말이 사실일까? 나는 다인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도 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거듭 질문을 던져 보지만 역시 웃기는 얘기다. 내가 사랑이라니... 다인이 아무리 순박하고 고운 여자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에 불과할 뿐이다. 다인 또한 피고용인으로서 내게 잘해주는 것일 뿐 나를 사랑하는 감정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그래, 좋아한다는 감정이라면 모를까 사랑이라니 말도 안 되지.
이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자니 진마담이 술잔을 코앞으로 들이민다.
"이 아저씨 정말로 많이 순진해졌네? 농담으로 한 마디 했더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잖아?"
"뭐야, 농담이었다고?"
"그럼, 진담인줄 알았어? 천하의 김진석 작가가 돈주고 산 여자를 사랑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말은 이렇게 하고있지만 진마담의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 어서 한 잔 마시자고. 오랜만에 온 진석씨 깝데기 벗겨서 매상 좀 올려야 겠으니까."
"나를 상대로는 돈벌고 싶지 않다며?"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진마담은 짐짓 모르겠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또 한 번 까르르 웃어버린다. 몇 달만의 만남인데도 어제보고 다시 보는 듯한 이런 느낌이 좋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진마담은 친구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비워갔다. 술을 붓고 마시고, 다시 채우고 비우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빈 병이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나 버렸다. 위스키 세 병이면 작은 양이 아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다. 시간도 꽤 흐른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한 잔 더 해도 괜찮겠어?"
약간 꼬인 목소리로 묻자 진마담 역시 게슴츠레한 눈으로 대답을 한다.
"벌써 새벽 두 시나 됐는데, 집에 안 들어가?"
"내가 언제 시간에 구애받고 술 마셨나?"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얼버무렸는데도 뭔가 눈치를 챈 듯 진마담은 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진석씨 정말로 외로움 타는구나?"
"또 그 얘기야?"
"내 눈은 못 속이네요."
"더 마셔도 괜찮은지나 대답해. 괜한 트집 잡지 말고."
"나야 상관없지. 내일은 어차피 쉬는 날이니까."
"그럼, 한 병만 더 마실까?"
말은 한 병이라고 했지만 얼마나 더 마시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진마담도 안다. 동이 트도록, 혹은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우욱... 머리가 깨져 나가는 것 같다. 어렵게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간다.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하긴, 새벽 여섯시까지 퍼마셨으니...
"다인! 나 시원한 꿀물 좀......"
밖을 향해 소리치던 나는 다인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가다가 나도 모르게 다인의 방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째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을까? 저쪽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화가 왔어야 정상인데 아직 연락이 없다는 것은...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무엇을 불안해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답이 있을 리 없다. 가정부가 잠시 집을 비웠다고 불안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니까. 나 김진석이라는 인간에게는 더욱 더...
그런데 어제 들었던 진마담의 말이 자꾸 귓전을 맴돈다.
-그러지 말고 감정을 잘 정리해 보라니까?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불편함과 외로움이란 감정은 분명히 틀리니까.
백산
수정일 2003년 04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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