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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바람의 수필] (8) 직장생활 막판에 만난 활화산같은 K상사
2006/02/14 00:00
입력 조회수 : 767
내가 모시는 상사가 있다. K상사. 나는 그분을 그렇게 지칭한다. 물론 나혼자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부를 뿐이다. 그분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하자면 무대포다. 불도저 처럼 밀어붙이는 무대포. 그러나 그냥 되던 안되던 앞뒤 재보지 않고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그런 무대포와는 비교를 할수 없다.
이를테면 합리적인 무대포라고나 할까. 일에 몰두 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어둠속에서도 환하게 용솟음치면서 치열하게 타오르는 활화산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런 상사를 나는 참 좋아한다. 물론 겉으로는 이런 내색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마음으로 통한다. 서로의 마음을 읽을수 있고 느낄수 있다. 내가 그렇게 K상사를 믿고 따르기에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나는 직장생활 17년째로 접어들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단맛쓴맛 다보고 이제는 퇴출을 눈앞에 둔 쉰세대라고 볼수 있다.
나름대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상사가 보기에는 언제나 눈에 차지 않는법. 그러나 내게는 불행하게도 최근 몇년간 상사가 없었다. 맡은일이 소위 흔한말로 첨단을 달리는 미래의 정보산업분야로 새로 생긴 신규업무부서였다.
특별하게 쌓아온 노하우가 없는 파트로 앞으로 일을 만들어 가야 하는 부서다. 위에 간부들은 있었지만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어 실직적인 책임자는 실무자인 나였다. 그렇게 3년간을 지내왔다. 자연스럽게 내위에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을 벌이기 보다는 있는 일에 안주하는 식이었다. 사내에서는 새로 생긴 부서라서 특별하게 챙겨주는 간부들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일종의 무풍지대라고 볼수 있는 부서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날 직속으로 상사가 온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겁이 덜컥 났다. 내위에 아무도 없이 모든 일은 내가 혼자 맡아서 다 처리해나오다가 갑자기 상사가 오면 여러가지로 부담이 될것 같았다.
속으로는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까지 생각했다. 아니 오지 말게 해달라고 로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램과는 아랑곳없이 예정대로 사내 인사발령이 나서 우리부서에 총책임자로 K소장님이 왔다.
상사를 직접 모시고 일을 하게 되니 처음에는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하는 일마다 소위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우선 업무 시간도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났다. 아니 짜증보다 내가 왜 뒤늦게 이렇게 안해도 되는 마음고생을 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 반문해보곤 했다.
그리고 내가 K상사를 굳이 부담스러워 할 이유는 없지만 나름대로 K상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K상사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 이유는 이렇다. 이분은 한우물만 판 분이었다. 소위 대한민국사회에서는 가장 잘나간다고 볼수 있는 경제전문기자 출신이다. 한창 호시절땐 장관이고 총리고 펜대 하나로 절절 매게 만들어 놓던 계급없는 제왕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자기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내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을 안가지려고 해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한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k상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느끼던 식의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귀를 열어놓았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후배직원이라도 말을 하면 무슨 얘기든 끝까지 들어주는 열린 마음의 사람이었다.
그런 상사를 부원들은 조금씩 따르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니 K상사는 우리부서의 최고 인기있는 상사가 되었다. 그러나 K상사가 그렇게 많은 직원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무슨 일이든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속전속결을 주장하지만 모든 책임을 부서의 최고 책임자인 그가 철저하게 지기 때문이다. 그런 상사를 사실은 직장생활 17년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만났다. 서류 결재 하나 품의 받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옛날에는 관행대로 세월아 네월아 되는 대로 흘러가다보니 길게는 일을 추진해서 결재가 나기까지 한달이상이 걸리는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부서는 달라졌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도 일주일이면 가부가 결정난다.
우리부서에서 새로 벌이는 일은 모두가 회사내에서 가장 먼저 시도해보는 업무가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잘 추진이 안되거나 막히는 업무가 있으면 하나둘씩 K상사가 있는 우리부서로 업무이관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부서에 업무가 늘어나서 부서원들은 근무시간이 크게 늘어났다.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가 내일이라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해나간다.
만약에 상사가 남아서 맡은 업무 하라고 강요한다면 부원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K상사는 남아서 일하는 부원들을 퇴근 시간 지났으면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래도 부원들은 남아서 일을 한다. 우리의 능력을 믿고 알아주 는 상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나고 고마워한다.
부원들이 알아서 스스로 일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미안해 하는 K상사는 이런말을 자주 한다. 내가 만약 사장이 되면 월급을 지금보다 다섯배를 많이 주겠다고 후배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벤처기업을 100개쯤 만들어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지금처럼 실업자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비해서 벤처 사장자리를 하나씩 보장해 주겠다고 한다.
K상사가 우리부서에 총사령관으로 온지 6개월만에 다시 회사내에 인사발령이 나기 직전에 간부들의 자리가 대폭바뀐다는 소문문이 돌았다. 그때 K상사가 다시 사내의 핵심부서 간부자리로 내정되었다. 모두들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K상사가 왜 요직 자리를 고사했는지 의아해 했다.
그러나 나는 K상사가 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수장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K상사를 우리 부원들은 카리스마처럼 믿고 따른다. 나는 K상사를 만나고 나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우선 나는 평소에 생각하던 고정관념의 틀을 완전히 깨는 데 성공했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K상사를 만난 이후 내가 얻어낸 가장 큰 소득의 하나이다. 나는 K상사와 술을 자주 먹는다. 술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주고 받는다. 나는 단 한마디도 헛되게 흘려넘기지 않는다. 하는 말 농담 하나 경청해서 듣는다. 그의 말속에는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대단한 다독가다. 책을 한분야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파고든다. 독서가 생활화 되어있는 그는 언제나 얘기할때 전문가가 된다. 어느 때 어느분을 만나더라도 그분야 전업전문가가 말하는 것보다 더 깊고 해박한 전문가로 상대를 한다.
K상사가 술자석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사연이 드라마 같다. 친구를 좋아하는 K상사는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돈을 많이 빌려줬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돈을 빌려가서 사업을 하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도가 나고 마음먹은 대로 사업이 되지 않아 부도가 나버리는 바람에 결국은 꿔준 돈을 받기는 커녕 담보잡은 집마저도 날라가고 말았다.
그래서 K상사는 친구에 대해 연구를 했다. 왜 정주영이나 빌게이츠같은 사람들은 돈없이도 재벌이 되었는데 돈을 빌려가지고도 사업을 키우기는 커녕 빌려준 돈마져도 다 날려버리나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이유를 알고 싶어 재벌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 보니 돈을 까먹은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즉 K상사는 기존의 낡은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세상도 모든 것도 새롭게 보인다고 강조한다.
그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다. 그러나 차츰 이해가 되었다.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신기하게도 달라져 보이고 불가능하게만 생각되는 일에도 돌파구가 생기는 것이었다. K상사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인력이 없어도 사람모자란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능력을 개발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활짝 열린 K상사를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인생은 지금보다 많이 달라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K상사와 생활하다 보니 생각이 많이 젊어졌다. 사고를 바꾸니 모든 것이 달라보이고 자신감이 생겼다.
일을 벌이기 싫어하고 소극적이던 내가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진 내자신에 스스로도 깜짝 깜짝 놀랄때가 있다. K상사와 내가 술자리를 자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명수/
www.people365.pe.kr
>
수정일 2003년 04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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