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간다. 설악산은 사계절 모두 좋지만 겨울보다는 여름에가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여름 산행은 대청봉의 바람꽃이 매직이다.
설악 능선에 많은 꽃이 있지만 바람꽃이 내 마음을 빼앗는다.
그 연약한 꽃의 매력을 못잊어 매년 한여름에 찾는다. 이번에는 좀 늦었지만
말복이 지나지 않았으니 삼복더위를 감수해야 한다.
한계령휴게소 광장에 서니 흘림골의 칠형제봉이 안개속에 숨었다.
바람이 이 산 저 산 구름을 몰고 다닌다. 보여줄 듯 하면서 다시 감추는
바람이 야속하지만 시원한 맛을 선물한다. 한계령에서 출발한 산행은
깔딱고개 몇 개를 넘으면 능선을 만난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귀때기청에 곁눈질하고
끝청, 중청, 대청으로 이어지는 설악좌 탐방이 시작된다.
초록 숲 사이로 조금만 산길은 완전 꽃길이다. 그리고 버섯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태풍 덕에 비가 내려서 숲속의 요정들이 우후죽순처럼 쑥쑥 올라 오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악산에 오르는 길이다.
사실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을 보고 중청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물고
공룡능선을 타면서 침봉들 사이에 핀 솔나리를 담고 싶었지만 날씨 탓에
이 로망이 틀어지고, 당일치기 강행군이다.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등 진귀한 꽃들이 발밑에 자욱하다.
가는 길마다 기묘한 침묵의 바위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앞선다.
한계령에서 시작한 산행은 끝청을 지나 중청대피소에서 한숨을 돌리고
설악의 꼭대기 대청으로 오르며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낸다.
이 짧은 능선의 꽃을 보기위해 한 여름에 강행군이다. 바로 바람꽃과 금강초롱이다.
바람꽃은 기대한 만큼의 자태는 아니지만 아직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얀꽃들이 납작 엎드린 모습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바람이 불면 늘 엎드려 숨죽이는 꽃이만 꺾이지 않고 매년 그때가 되면
피고 지며 그 자리를 도도하게 지키고 있다.
제멋대로 생긴 바위 앞에 앉아 꿈에 그리던 내설악 공룡능선의 침봉과 바람꽃을
무정하게 한참을 바라본다,
보라색의 금강초롱은 영롱하게 빛나고 층층잔대 꽃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나게 만든다. 설악의 여름꽃인 가는장구채와 산오이풀이도
대청봉을 빛내는 주인공이다. 한계령에서 시작한 설악산 서북능선의 힘든 여정은 이 연약한
꽃들과 함께하여 마지막까지 맵시있게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