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팀은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국민에게 기쁨도 주고 용기도 줍니다.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이 슬픔에 잠긴 요즘 같은 때, 선수들의 승전보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대표팀 주치의입니다, 의사로서 이보다 책임이 막중한 일이 또 있을까요?"
2014국제축구연맹(FIFA)브라질월드컵 개막을 30여 일 앞두고 홍명보호 태극전사 23명의 건강을 책임진 송준섭(45·서울제이에스병원 대표원장) 박사는 '대표팀 주치의'의 의미를 이렇게 새긴다. 그의 가운 왼쪽 깃에는 태극마크가 수놓아져 있다. 대표팀 주치의로서의 자부심의 표현이자 책임감의 상징이다.
송 박사는 윤영설(연세대 교수)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의 추천으로 2007년부터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송 박사의 풍부한 수술 경험에 주목했다.
▲ 송준섭 축구 국가대표팀 주치의<뉴시스 제공>
이후 송 박사는 2009FIFA이집트U-20월드컵·2010FIFA남아공월드컵·2010광저우아시안게임·2012런던올림픽 등 수많은 대회를 각급 대표팀과 함께 하며 선수들의 건강을 지켰다. 항상 선수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편안한 요람이 돼주지만, 이따금은 부상 선수들에게 하차를 명하는 '저승사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한을 눈물로 삭히며 떠나는 선수를 멀리서 바라보며 송 박사도 함께 운다.
송 박사는 8년 가까이 대표팀과 고락을 함께 해온 주치의로서 홍명보호의 선전을 자신했다. 그러면서 국민적 성원을 머리 숙여 청했다.
다음은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의 발표를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제이에스병원에서 가진 송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국가대표 발탁이 유력한 해외파 선수들 중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선수들의 상태는.
"다행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선수는 없다. 박주영 선수는 영국에서 (봉와직염) 수술 후 실밥을 다 풀고, 상처가 다 아문 상태에서 (4월4일)귀국했다. 덕분에 바로 기초재활이 가능했고, 의료진은 2주간 재발 여부에 대해 아주 세심히 주시했다. 다행히 재발 우려가 완전히 사라져 2주 후 필드 훈련을 소화했으며, 지금은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박주호 선수도 봉와직염으로 (4월28일)한국에 돌아왔는데 수술 후 회복 단계에 있다. 기성용 선수는 무릎 슬개골이 많이 약화된 상태에서 (5월6일)귀국했다. 일각에서는 기성용 선수의 향후 선수 생명을 우려하는데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1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투여하고, 영국에서 받지 못한 첨단치료를 중점적으로 해서 통증을 가라앉히려고 한다. 박종우 선수는 뒷다리 근육이 파열된 것인데 2~3주 가량이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 다른 해외파 선수들이나 K리그 선수들의 몸 상태는 어떤가
"최근 5년 동안의 선수들에 관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놓았다. 선수들을 거의 청소년 시절부터 쭉 봐왔다. 그래서 이 선수는 어디가 취약한지 다 알고 있다. 또한 선수들과도 수시로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해오고 있다. 박주영 선수의 경우 SNS를 통해 상태를 사진으로 확인하고 원격진료하듯이 즉각 수술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효과적인 치료가 이뤄졌다."
- 해외파 선수들이 큰 부상도 아닌데 팀에서 시즌을 마무리하지 않고 조기 귀국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유럽의 경우 우리 상식으로는 의료 선진국인데 굳이 귀국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과거 일본의 소니나 파나소닉을 최고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의 삼성과 LG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야 유럽의 수준이 더 높았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의료 수준, 정보, 언어 등을 모두 비교해봤을 때 현지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 국내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들어온 것 같다. 게다가 유럽은 의료체계가 복잡해 전문의를 만나려면 일반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 실례로 기성용 선수의 경우 이 때문에 3주 동안 진료를 받지 못한 채 휴식만 취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또한 유럽에서는 치료보다 예방이나 자연치유를 선호한다. 물론 그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수들도 어쩔 수 없이 귀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 그동안 대표팀 주치의를 해오면서 가장 보람됐던 것은 무엇인가.
"역시 볼턴과 대표팀의 에이스인 이청용 선수의 부활이다. 그가 골을 넣고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기쁘다. 2011년 그가 정강이뼈 골절이라는 치명상을 입었을 때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재활에 전력해 지금의 좋은 결과를 낳았다. 노력의 결실을 선수들을 통해 보기 때문에 힘들어도 대표팀 주치의를 계속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무엇인지.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곽태휘 선수, 2012런던올림픽에서 한국영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정말 짠했다.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얼마나 피땀을 흘렸는지 잘 안다. 선수들은 나를 저승사자라고 표현한다지만 친아들을 돌려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다."
- 대표팀 주치의가 병원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지.
"사실 내원하는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이미 수술을 받은 다른 환자 분의 소개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대표팀 주치의를 하면서 병원 홍보에 도움이 안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것을 노렸다면 주치의를 지금까지 맡아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치의는 축구협회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대표선수 중 한 명이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자리다. 선수들을 치료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거스 히딩크(68) 전 대표팀 감독이 지난 2월 송 박사로부터 무릎 연골 재생을 위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3월 네덜란드 순방에서 히딩크 감독을 예로 들며 한국의 의료기술을 알렉산더르 국왕 내외에게 자랑해 또 한 번 주목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이후 네덜란드대표팀을 맡을 예정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의 현재 무릎 상태는 어떤가.
"얼마 전 SNS로 감독님과 대화를 하는데 1주일 전에 골프를 쳤다고 한다. 수술할 때 3개월이 지나면 골프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다. 히딩크 감독님이 '과거에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다 사라졌다. 골프를 다시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한국에 가서 올바른 모습으로 걸어보겠다'고 했다. 정말 보람있었다. 한국 의료기술의 힘과 수준이 이 정도가 됐구나 싶어서 자랑스러웠다. 히딩크 감독님의 시술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인도 고위인사, 유럽 유명인사 등 해외 의료관광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실제 수술 일정도 여러 개 잡았다. 그런데 월드컵 때문에 모두 7월 이후로 다 미뤄야 했다."
- 월드컵 기간 중 한참 동안 병원을 비우게 되는데 손해가 아닌가.
"사실 한 달 정도 비우면 수억원의 매출 손실은 불가피하다. 큰 돈이지만 그 돈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한다. 선수들과 함께 2002한일월드컵 4강신화를 재현할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밀알이 되겠다."
- 대표팀 주치의가 예상하는 홍명보호의 브라질월드컵 성적은.
"홍명보 감독은 2009이집트U-20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고,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일궜다. 그동안 홍명보호는 시작은 늘 미약했지만 끝은 언제나 창대했다. 이번 홍명보호 역시 FIFA 랭킹은 역대 최하위이고, 선수 연령층은 최연소라는 점 때문에 우려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은 굉장히 창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대표팀 주치의로서 국민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해외파 선수들을 둘러싸고 조기 귀국 논란이 많다. 그러나 주치의로서 볼 때 선수들은 월드컵 출전을 국가적 대사로 보고 있다. 국가를 대표해서 전쟁에 나가는 심정이다.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몸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 선수들에 대해 이런저런 억측과 비판이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브라질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우리 선수들에게 더 많은 응원으로 용기를 북돋워줬으면 한다."
◇송준섭 박사 프로필
▲1969년생 ▲조선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정형외과 전문의 ▲2010남아공월드컵 대표팀 주치의
▲2012런던올림픽 대표팀 주치의 ▲현 제이에스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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