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코리아]이경희 기자=“와우! 빨리 올라와봐, 칠형제봉이 보인다, 저기 한계령도 보여”
“그래, 뭐여, 운무가 가득하구만”
“산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시라”
남설악 흘림골에서 등선대로 오르는 길에 부부가 나눈 이야기다.
부인이 앞서 오고 남편이 뒤를 따른다.
남설악 흘림골은 지금 운무가 지배하는 하얀세상이다.
설악산 비 예보가 있지만 산행을 강행한다.
이번에는 산행을 짧은 코스로 잡았다.
산꾼은 설악산과 지리산을 매년 숙제하듯이 올라야 직성이 풀린다.
사실 설악산 예약과 취소를 수번 반복했다.
가정사정으로, 기상악화로 일정이 뒤범벅 되면서 단풍철을 앞두고 실행에 옮긴다.
8월 중순 대청봉 바람꽃이 필때가 산행 적기인데 가지 못한 아쉬움이 깊다.
인제 원통에서 버스가 한계령을 향해 달린다.
서북능선 끝자락 안산에서 운무가 피어 오르며 계곡을 살짝 덮는다.
한계령 고개를 앞두고 안개는 점점 짙어진다. 조망권 보장은 없지만 몽환적인 분위기 연출된다.
산자락이 안보이면 안보이는데로 산은 멋을 풍긴다.
비 예보가 있지만 지금은 걱정안해도 될 것 같다.
흘림골탐방소에 오전 9시에 도착한다.
운무가 칠형제봉을 하얀천으로 덮는다.
바람에 밀리는 운무 사이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살짝 얼굴을 내민다.
해는 구름속에 숨고 바람과 운무가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조망권이 없으니 앞만 보고 오른데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여심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이다.
현지인이 밤새 이곳에 많은 비가 내렸다고 전한다.
운무와 산봉우리의 숨박꼭질은 등산대를 오르고 하산때까지 계속된다.
등선대에서 바라보는 칠형제봉과 대청봉 그리고 망경대 조망이 환상적인데 지금은 모두가 하얀색이다.
거기다가 기대했던 금강초롱 꽃구경도 한발 늦었다.
단지 구절초와 쑥부쟁이 그리고 산부채가 듬성듬성 보인다.
흘림골은 9월말 현재 여름과 가을 사이로 밋밋하다.
등선대쉼터에서 오색까지 깊은 계곡 내리막이 시작된다.
계곡과 점봉산 자락이 아직도 운무가 감싸고 돌며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을꽃과 단풍이 없으니 나무계단이 지루하다.
다행히 등선폭포에 물줄기가 시원 맛을 선사한다.
그동안 카메라 렌즈가 심심했는데 등선폭포 물줄기를 연신 담는다.
등선폭포를 지나면서 해가 구름속에서 나온다.
덩달아 운무도 서서히 물러가며 조망을 보여준다.
용소폭포 갈림길을 지나면 주전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교차한다.
하산객보다 오르는 관광객이 많다.
오늘 흘림골 산행은 비 예보 탓에 산객이 손가락에 곱을 정도이다.
계곡 물소리를 벗삼아 내려오니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성국사가 가까워지고 사실상 산행은 끝난 것이다.
해가 뜨겁게 내리비친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쾌청한 하늘이다.
하지만 버스타고 한계령으로 가는 길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