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82) 일본에 우뚝선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 (2)
김원장은 여기저기 강사로 와달라는 초청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워낙 병원업무에 쫓기다 보니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한두달도 아니고 1년간의 스케줄이 모두 잡혀 있다. 그래서 갑작스런 약속 변경을 요구 받거나 불시 방문자들이 찾아올때 가장 곤혹스럽다고 한다.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수가 있다. 그는 어떤 강연을 하더라도 연설을 하기전에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그리고 분명히 밝힌단다.

그렇게 분명한 뿌리의식과 노인공경심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인술이 어우려져 김원장은 일본사회라는 박힌 돌틈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타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노력과 땀의 결실로 이루어졌다. 세계제일의 노인복지국가 스웨덴에서 3개월간 머물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직접 배워 오기도 했다.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면서 인생의 말기를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한 전문시설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영국에서 호스피스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진료소에는 죽음에 임박한 말기암 노인 환자 등을 위한 호스피스 병상이 두개 있다.
"인술을 베푼다는 사명감 없이 단순한 경영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이런 고생 할 필요가 없지요. 노인시설은 아무리 운영을 잘해도 적자를 면하기 힘들거든요. 우리시설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료소에서 버는 돈을 이곳에다 메꾸는 식으로 겨우 현상유지를 해나가는 실정이지요. 그렇다고 문닫을 생각은 없어요. 앞으로 노령화추세는 더욱 가속화 될텐데 그분들을 떠맡아줄 시설을 누군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일을 우리 부부가 하는 것 뿐입니다. 저나 남편이나 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거든요"
편하게 살기로 따지면 교통좋고 목좋은 위치에 병원 하나 세워서 운영하면 된다는 것을 머리 좋고 똑똑한 김원장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먹고 살수 있는 부부의사들이 왜 이런 촌구석에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잔병치레가 많은 노인들에게 이들 부부의사야말로 소금같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욱 그만둘수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간세이보의 모체인 후몽인 진료소는 마취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내과 등 모두 4개 클리닉이 있다. 마취과와 비뇨기과는 김원장이 전문이고 남편은 내과를 다룬다. 그리고 성형외과는 동생이 맡고 있다. 병상이 19개밖에 안되는 작은 병원이지만 의사가 3명이나 된다.
왜 여자가 비뇨기과 전문의가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경암센터에서 근무할때 환자들의 합병증이 아랫배 쪽에 많이 생기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비뇨기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파고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제이름 앞에 비뇨기과 전문의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더군요"
비뇨기과 치료를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남자환자들이 비뇨기과 클리닉을 찾아왔다가 담당의사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는 당황해서 바지춤을 양손으로 잡은채 어쩔줄 모르고 엉거주춤 서있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산속에 위치한 작은 병원. 겨우 2층뿐인데도 공간이 널찍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았다. 이거야 말로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원장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물론 낭비이지요. 그러나 환자와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환자는 팔다리가 멀쩡한 우리네와는 다르니까요.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계단을 걷는 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런 환자가 우리병원을 찾아오면 휠체어를 탄채로 진료실까지 들어올 있으니까 엘리베이터는 꼭 필요하다고 봐야겠지요. 환자입장에서 생각하면 말입니다"
원장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몸이 불편한 환자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엘리베이터라니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진료소와 노인보건시설인 간세이보와는 약 300m 거리. 말하자면 진료소와 보건시설은 서로 협력 보완관계라고 볼수 있다. 김원장을 비롯한 3명의 의사들이 후몽인 진료소에서 일반환자들을 돌보면서 수시로 간세이보를 들락거린다. 노인시설에 입원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회진을 하는 셈이다.
간세이보는 직원들이 24시간 풀타임 근무로 돌아간다. 간호사등을 포함한 40여명의 직원들이 교대로 야근을 하면서 노인들을 보살핀다.
워낙 나이가 많은 고령자들이라 언제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특히 야간 근무때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당직자가 야간근무를 하는 동안 입원환자의 증세가 갑자기 악화되거나 돌발상황이라도 일어나면 즉시 담당의사에게 연락한다.
보건시설의 규모에 비해 40여명의 직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교대근무. 적당히 주간중심으로 운영을 해나간다면 그렇게 많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심신이 불편한 환자들의 24시간 손발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더든다 할지라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다.
기왕 시작한 사업이라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다는 김원장. 그의 사전에 대충대충이라는 말은 없다. 간세이보도 마찬가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쓴 흔적이 구석구석에 배어있다. 노인보건 시설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어린자녀를 마음놓고 맡길수 있는 탁아시설과 유아교사까지 두고 있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김원장의 그런 성격이 결국 간세이보를 규모는 작지만 질적으로는 일본에서 손꼽힐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하루를 여는 아침 8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어린 두자녀를 데리고 들어온다. 한아이는 등에 업고 한아이는 손을 잡은채 햇살같이 환한 표정으로 아침인사를 나누며 활기차게 출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건물안에 들어서자 마자 아이가 엄마손을 놓고 유아교사쪽으로 반갑게 달려간다. 유아교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간호사의 등에 업힌 아이를 조심스럽게 받아 안고 탁아실로 올라간다. 어떤 간호사 직원은 세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표정들이다. 기혼직장여성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아이문제를 일터의 한쪽 공간에 마련한 작은 탁아방 하나로 거뜬히 해결하는 김원장의 지혜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직장에 다니다가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맡길데가 없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여성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기에…
◇ 사진은 몸이 불편한 노인을 보살펴 주고 있는 김정아원장.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0/10/11 10:29:20
피플코리아 홈으로 바로가기 ☞ 클릭이사람 명단 1~345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