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엿보기] (40) 풍납토성 유적훼손
2004/11/17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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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 일이. 2000년 5월13일은 백제문화재가 테러당한 대참사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유적발굴현장을 재건축 아파트조합측이 굴삭기를 동원하여 마구 파헤치고 훼손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기 백제 유물의 보존여부에 촉각이 쏠린 가운데 발굴중인 유물을 인위적으로 파괴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경찰은 무단으로 공사를 한 혐의로 경당지구 재건축아파트 조합장 팽모씨를 붙잡아 자세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이번 훼손사건은 그동안 발굴작업을 해오던 한신대 조사단이 추가발굴 비용문제로 조합측과 마찰을 빚은 뒤 철수한 사이에 일어났다. 경찰 조사결과 팽씨는 포클레인 기사를 시켜 오전 9시부터 30여분 동안 1천2백평의 유적중 150평을 굴착하고 흙으로 메워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으로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꼽히는 구덩이 유적이 완전히 파괴됐다. 문화재청의 현장조사결과 유구 2기는 회복불능 상태로 이중 말머리뼈·관직명 토기등이 출토된 9호 구덩이 유적은 4분의 3이 파괴되었다.

이번 문화재 참사는 문화재 당국의 무사안일과 무소신이 빚어낸 예고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경당연립 재건축조합 예정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는 풍납토성이 초기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을 높이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직명 토기, 대형 건물터, 전돌 등등…

이과정에서 고고학계에서 유적 보존문제를 거론하자 문화재청이 내세운 원칙은 "종합보존대책이 나올때까지 재건축을 보류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공기가 6개월이상 지연되면서 주택재건축 조합원들은 고스란히 이자부담을 안고 전세를 전전하며 부채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당초 발표한 보존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기본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문화재청과 사적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시는 유적 보존 예산대책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휘피해왔다. 골치아픈 사안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문화재청은 백제유적을 훼손한 경당재건축 조합으로부터 일부 발굴이 끝났으니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유적훼손이 예견됐는데도 보호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발굴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데다 이곳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재산권 피해를 우려한 조합원이 유적훼손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취한 것이다. 조합원들이 어떤 주장을 해도 문화재 파괴는 결코 정당화될수 없다. 그러나 당국의 책임도 크다. 주민들 편에 서는 최소한의 성의만 보였어도 유적을 훼손하는 비극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번 파괴된 문화재는 영원히 살려낼수가 없다. 2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땅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백제문화가 하루아침에 파괴되는 어리석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명수

2000/05/15 17:05
[ 김명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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