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46) 이시대의 유일한 줄광대 김대균
2003/09/1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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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46) 이시대의 유일한 줄광대 김대균
 
‘천생 만만이 필수지 직업이라

벽공에다 외줄은 거미같이 왕래할 때에

이 김대균이는 탈것이 없어 줄을 탔던 것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준보유자 김대균(33). 3M높이에 매달린 길이 25M의 외줄 위에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며 그가 익살섞어 쏟아내는 `아니리'다.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온 조선광대 줄타기. 1천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울 한복판에서 줄판을 벌인다.

이시대의 유일한 줄광대가 공중에 매단 외줄 위에서 부리는 잔노릇에 관중들이 숨을 죽인다. 줄위를 얌전히 걷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질 듯 하다가 다시 공중으로 번쩍 튀어오른다. 그의 동작이 이리저리 움직일때마다 관중들의 시선도 함께 따라다닌다.

떨어질 듯 비틀비틀 줄위에서 벌이는 잔노릇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관중들의 표정도 볼만하다.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걸칙한 재담을 퍼부어댄다.

'줄타는 모습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는 마음편안히 구경만 하시겠지만
한가닥 외줄위에 서있는 저는 가슴이 두근반 서근반 합니다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여도 온몸에서 땀이 후즐근 하게 쏟아지는 오뉴월 땡볕. 하물며 한가닥 판줄위에서 껑충껑충 뛰고 달리고 걷는 잔노릇묘기를 부리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러나 표정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힘들기는 커녕 한바탕 신나는 놀이마당 잔치기분이다. 무엇이 그를 저토록 신명나는 줄타기 인생으로 만들었을까? 너무 힘들어서 아무말도 안나오지 싶은데 신기하게도 아니리는 계속 이어진다.

'이쪽도 낭(낭떨어지)요 저쪽도 낭이요 좌우가 낭인데
손에 짚은건(가진 것) 없고
머리에 쓴 것은 초립밖에 없것다'

쩡꿍 정저꿍(아니리를 하고 호흡장단을 맞추고 신호를 주고받는 소리)소리와 함께 관중들도 줄위의 광대도 하나가 된다.

그의 줄타기 인생은 9살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예인의 꿈을 아들 대균에게 심어주기 위해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 정읍을 떠나 민속촌으로 올라온다. 어린 대균은 아버지가 일하는 민속촌에 매일 놀러갔다.

그때 민속촌에서 줄광대 김영철의 눈에 띄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줄위에 올려진다. 그렇게 삼년이 흐르는 동안 줄에 재미를 붙인다. 스스로 줄을 타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스승 김영철은 뇌일혈로 쓰러져 다시는 줄을 탈수 없게 된다.

다시는 줄을 탈수 없는 줄광대 김영철 선생을 아버지는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온다. 소년 대균의 줄학습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뼈를 깎는 훈련에 돌입한다. 쓰러져 누운 선생의 말과 표정만으로 줄위에서 해야 하는 요령을 터득해 나간다. 줄위에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잘수 있을 만큼 줄이 몸에 붙는다.

줄을 탄지 7년만에 민속촌에서 정식으로 출연료를 받으며 줄을 타는 연희 줄광대로 우뚝서게 된다. 이듬해인 17살 때 중요무형문화재 58호 줄타기 발표공연에 출연하여 스승의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잔노릇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는다. 중요 무형문화재 사상 최연소 전수조교에 임명되는 영광도 함께 누린다. 이때부터 줄타기 공연횟수가 늘어나고 기량 또한 일취월장한다.

그러나 대균의 나이 스물두살 때 그를 분신처럼 여기던 스승님은 끝내 세상을 떠난다. 이후 대균은 예능 보유자도 없는 줄타기를 혼자 끌어안게 된다. 홀로서기가 힘들어 한때 포기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줄광대가 자신의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스승이 떠난후 민속촌 생활을 정리한다. 스승과 동문인 이시대 마지막 재인청 창우 이동안 선생에게 판줄의 재담과 아니리를 학습받는다. 그리고 소리공부를 위해 성우향 선생을 찾아간다.

그렇게 줄을 타기 시작한지 어느덧 20년. 김영철선생에게 줄타기를 그리고 마지막 재인청 창우 이동안 명인에게 판줄의 재담과 타령을 전수받았다. 일제시대때 사라진 판줄의 원형을 이동안 명인과 함께 1991년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복원해냈다. 이동안 명인은 80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타계하실때까지 대균의 줄타기 공연에 어릿광대역으로 출연할정도로 판줄 전승을 위해 예술혼을 불태웠다.

줄타기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지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줄타기 명인들은 사라지고 이제 김대균에 의해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줄타기 보존회 대표만 혼자 외롭게 남아 줄을 타고 있다.

스승님의 그늘없이 홀로 줄타기의 원형을 보존하고 그대로 지켜내는 일은 그에게 1천3백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까딱한번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추락하여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판줄. 그러나 그는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줄판을 버릴수가 없다. 그런 압박감속에서도 그가 줄을 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토록 긴세월의 맥을 이어온 우리의 위대한 고전예술 줄타기의 화려한 부흥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마당놀이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줄타기. 조선조말까지만 해도 임금님앞에서 공연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조선조말 줄을 잘타서 임금님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던 김상봉 최상천 등 수많은 줄타기 명인이 나왔다.

조선조때만 해도 줄타기가 인기가 있다보니 그 줄타기를 흉내내는 놀이패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우리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일본정책의 하나로 줄타기 판줄이 끊기게 된다.

판줄이란 줄타기를 연행할 때 놀이마당에서 구경꾼도 모아놓고 삼현육각과 줄광대의 상대역인 어릿광대를 모두 갖추어서 제대로 경연하는 경우를 말한다. 축제를 주관하는 주최측에서 판줄을 공연할 계획이면 줄광대를 초청한다. 줄광대는 상대역인 어릿광대와 반주악사인 삼현육각 잽이와 줄을 매는 뒷꾼을 대동하고 온다.

줄광대가 작수목에 오르면 쉬잇∼소리를 내어 삼현을 그치게 하고 갖가지 재담을 늘어놓는다. 어릿광대는 추임새도 하고 재담을 받기도 한다. 줄광대는 재담을 섞어가며 중타령 왈자타령등 소리와 이야기를 엮어간 다음 갖가지 잔노릇을 벌인다.

허공에 그어놓은 외줄위에서 줄타기 명인 대균의 잔노릇이 질펀하게 이어진다. 한발을 굽히고 한발을 줄밑으로 늘어뜨리는 외홍잽이. 몸을 날려 돌아앉는 거중틀기. 왼발을 꿇고 오른발을 세우고 앉는 무릎 꿇기. 그밖에 풍치기 가세트름 같은 동작을 연속으로 보여준다.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같은 줄위에서 이리저리 뛰고 걷고 놀면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아슬아슬 조마조마 숨죽이면서 올려다보는 관중들을 내려다보며 냅다 소리를 질러댄다.

"여러분은 좋겠수다 편안히 앉아 구경만 하면 되니 우리한번 자리를 바꿔봅시다

당신들이 초립을 쓰고 이 줄위에 올라와 보시오

줄을 타는 나는 당신이 앉아있는 그 멍석에 앉아봅시다

줄타는 당신들 구경좀 합시다

그래야 당신들도 내 어려운 사정을 알겁니다"

바라보던 사람들이 주춤하며 몸을 웅크린다. 그렇다. 그는 줄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으로 이세상을 살아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입장을 바꿔보면 상대방을 안다는 심정으로 어쩌면 그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답답하고 안풀리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소리공부를 위해 성우향 선생을 찾았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난다. 화가 심일란. 줄타는 대균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그녀와의 운명적 만남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줄타기도 하나의 예술일수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들 민재를 얻었다.

1994년 결혼하여 수원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답답한 도시생활이 싫어 지금은 안성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팔십여평의 텃밭을 갈아엎고 줄을 매었다. 언제라도 줄위에 오를수 있는 줄타기 연습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다니고 있다.

줄타기보존회 대표. 한가닥 허공줄 위에서 춤추고 소리하고 양반자세로 앉기도 한다. 한가닥 줄을 발판삼아 냅다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허튼타령 장단에 두무릎 꿇고 앉는다. 한가닥 외줄이 아닌 넓다란 양반집 안방 아랫목에 양반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왼무릎을 바른 무릎앞으로 건내고 바른 무릎은 왼무릎 앞으로 건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날쌔기가 비호같다.

줄타기 명인은 그렇게 외줄위에 자기 인생을 올려놓고 신명나는 판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 공연장 한쪽에 앉아서 줄타는 아빠를 올려다 보는 아들 민재와 눈을 맞추며 피식 웃기도 한다.

줄타기의 맥을 외롭게 이어가고 있는 이시대의 마지막 줄광대. 문화의 시대 새천년을 맞아 그의 줄타기가 1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찬란한 꽃을 피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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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0/06/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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