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근로. 중국집 배달. 일본농사 아르바이트… 그리고 자원봉사… 배낭여행… 젊은 청춘도 아니고 환갑 넘은 노인이 365일 국경을 넘나들며 이런 일을 한다면 뭔가 그럴만한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햇빛 따사로운 오후 여의도 공원에서 만난 이일영 노인은 첫 느낌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63세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게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훌쩍 배낭여행을 떠날 차림이었다.
그의 꿈은 단 두 가지. 자원봉사와 배낭여행이다. 자장면 배달과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자원봉사는 멈춤이 없으며 배낭여행의 꿈은 8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97년 여름. 어느 날 갑자기 사이비종교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아내와 불화가 잦아지면서 사는 것이 싫어졌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다리 난간 위에서 뛰어내렸지만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 저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자신을 탓하며 친구를 찾아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둘이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다.
절망에 빠진 그를 지켜보다 못해 친구가 여행을 제안했다.
“여행? 그래! 기왕 죽더라도 여행이나 한번 하고 죽자.”
외국어를 모르니 차라리 이 참에 여행하다가 국제 미아라도 되어 버리고 싶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배낭을 메기로 작심했다.
그의 해외 배낭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올 심산으로 대학생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하는 여행이라 꼼꼼히 여행 메모를 하고 정리를 해서 한국에 돌아와 출판사에 유작이 될 책 출간을 의뢰했다.
그러나 한번 여행으로는 부족하니 여행을 좀더 해서 내용을 보강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그의 작은 인생의 목표가 만들어진다.
그런 사연을 안고 떠난 유럽 2차 여행과 아프리카 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떠났던 절망의 여행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의 여행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지독한 가난,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들을 위해 남은 삶을 아낌없이 살리라고 다짐하게 된다.
국내에 돌아오자마자 유럽에서 만난 천주교에 귀의하고,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꾸려나갔다.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과 조우한 그는 유럽 바르샤바 여행 중 강도를 만나 여권이며 지갑까지 몽땅 털려 오도 가도 못하는 국제 미아 신세가 된 30살 연하의 일본 청년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와 친구가 되고 그의 가족과도 진한 인연을 맺는다.

현재 그는 국내 4개의 자원봉사자 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틈틈이 다니는 배낭여행에서도 국제 자원봉사자가 되어 세상을 향한 자신의 손을 놓지 않는다.
1년의 반은 국내에서 공공근로, 자장면 배달 등으로 돈을 벌어 국내 자원봉사 단체에서 봉사하며, 나머지 일 년의 반은 일본인 친구의 집에 가서 농장일을 도우며 가족처럼 지내고 틈틈이 모아 두었던 돈으로 어렵게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의 삶은 아직도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모아 둔 재산을 아끼고 아껴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한다며 위축되어 가는 어른들에게 60세의 인생을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
아프거나 병들면 자식들이나 가족에게 짐이 될까 무서워 활동을 제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원봉사와 여행으로 활기차고 당당하게 인생을 누리는 삶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또는 삶이 공허해진 노인들에게 우리의 삶도 활기차고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새롭게 기획되길 바라며 화려하진 않지만 당당한 노년을 즐기는 삶으로 초대한다.
55세부터 63세가 된 지금까지 그는 배낭을 메고 유럽, 아프리카, 일본, 중국, 티벳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여행을 했다.

여행하면서 바라본 산하와 사람들은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다혈질인 그를 신앙심 넘치는 자원봉사자요 장기기증자로 변화시켰다.
그는 현재 사랑의 손길 자원봉사단과 재난복구 봉사단, 아우름 봉사단을 결성하여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
여행은 살 희망이 없는 그를 그렇게 180도 바꿔 놓았고, 배낭에 60조각 인생을 담아 때로는 공원에서 노숙을 하거나 싸구려 여관에서 쪽잠을 자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돌아갈 가정도 없고, 불러주는 직장도 없는 빈털터리 인생이지만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아 배낭여행을 떠나고 가는 곳마다 자원봉사거리를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그는 삶의 짐이 버거워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배낭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고 또한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연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서 돈보다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명예퇴직, 은퇴, 황혼 이혼으로 중년을 훌쩍 넘기고 파고다 공원에 앉아 애꿎은 담배나 쭉 쭉 빨아대거나 툇마루에 앉아 쓸쓸하다고 푸념을 늘어놓기 보다는 배낭을 챙겨 여행을 떠난다면 그만큼 인생을 젊게 사는 것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세계 여행과 자원봉사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는 그는 다리에 힘이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배낭을 짊어지리라 다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우물 안 개구리같이 살아온 나를 개화시키기 시작했어요. 나에게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집도 없고 일정한 직장도 없지만 부정기적으로 일을 하면서 경비를 모아 여행을 떠난다.
누가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했던가. 그의 말을 빌리면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인생살이가 고달프지 않다.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처럼 비싼 집과 비싼 차를 사놓고 100년도 못 산다면 억울해 할 사람 참 많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인생의 짐이 참 가벼운 셈이다.
배낭을 챙겨서 이 나라 저 나라로 여행하다 보면 짐이 더욱 가벼워야 한다는 지혜가 생긴다. 이 몸이 죽으면 장기까지 기증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몸이 아닌가. 그러니 소중히 관리해야지.
남길 재산은 없지만 여행하다 남은 기차 삯이라도 있으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가야겠다.
영원한 자유인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정을 나누며 살다가 죽어서 장기까지 아낌없이 다 주고 가겠다는 그를 만나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의 황혼을 그렇게 사는 것도 보람 있는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망가진 삶의 끝에서 화려한 노년으로 부활한 자신의 자전적 여행 에세이를 책으로 엮어 최근에‘나는 예순 세 살에 배낭여행을 떠난다’라는 제목으로 펴내기도 했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어 온 우리 시대의 젊은 노인 이일영. 늦게 시작한 일에 빠져 밤새는 줄 모른다고 그는 지금 배낭여행과 자원봉사에 흠뻑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돈이 생기면 불우시설 만들어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내 몸 없어지는 날까지 자원봉사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여유 있으면 배낭여행을 하고 싶어요.”
그는 인생의 노년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노년을 그처럼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사회가 그만큼 밝고 아름다워 질 테니까...
나는 예순 세 살에 배낭여행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었을 때 나에게도 이런 용기가 생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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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4년 10월09일 11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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