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엿보기] (94) 덕천선생과 무심행여사 경북 상주가 고향인 77세 이상규 노인은 전국을 돌면서 기막힌 사연으로 기막힌 사람의 기혈을 뚫어주는 특이한 사람이다.
부친이 72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라는 것도 기록에 남을 일이지만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을 보면 파란만장하다. 그가 세상에 태어날 때 맏형은 이미 손주가 있었다.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덕을 많이 쌓는다는 의미를 담아 덕천(德泉)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8년을 근무하다가 21살 때 결혼하여 전매청에서 15년을 근무했다.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중매로 만난 부인 무심행여사가 결혼 9년만인 26살에 심각(心覺)을 하면서부터였다. 아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와서 육체는 사체가 되듯이 전혀 움직이지 못해 현실은 망각하고 영(靈)만 영계에 머무는 유체이탈 현상이 온 것이다.
그날 이후로 아내를 대신해서 육아까지 떠맡은 그는 4남매를 키우면서 경기하고 놀래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기를 돌리는 것을 터득했다.
자녀를 키우면서 막힌 기를 뚫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를 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기막힌 사람의 혈을 돌려서 사혈을 시키면 생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체험하는 재미로 힘든 줄도 모르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큰아이가 8살 때 유체이탈을 한 이후 수시로 유체이탈을 한 무심행이 58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남편 덕천은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 바쁜 틈에도 새벽 세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염불을 하고 수행 정진했다.
무심행은 유체이탈 이후 남편이고 자식이고 속세의 인연이 모두 끊어지면서 설법만 했다. 한글도 모르는 일자무식 아내의 심안이 갑자기 밝아져 모든 사람들의 심성을 한눈에 꿰뚫어 설파하는 진리의 법문에 감동을 받아서 각 종단의 고승들이며 정치인, 학자 등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유체 이탈한 이후 진리의 법문을 이치에 맞게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감당을 못할 지경이었다.
무심행은 마음의 보배를 찾고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보배를 찾으라고 마음설교를 했지만 일반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는 것이 안타까워 울면서 절간이고 교회이고 도 닦는 사람들만 찾아다녔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갔다.
덕천은 애 키우고 살림하고 여자 노릇만 하면서 살다보니 몸은 남자지만 어머니 역할이 그의 정신과 육체에 침투되어서 그 기운이 어머니의 자애심이 되어 기를 뚫어주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무심행 여사는 마지막에 남편에게 마음에서 나오는 보배 기운을 전수시키고 운명하였다. 법문수록 피눈물의 발원이 바로 그것이다. 무심행이 덕천에게 남긴 예언과 법문수록 피눈물의 발원을 일부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일이 무엇인지 다같이 눈을 감고 한마음 한뜻으로 깊이깊이 생각해봅시다. 병자를 볼 때에 내가 곧 병자라고 생각하며, 길에서 문전걸식하는 거지를 볼 때에는 내가 곧 거지인 것 같이 생각해 봅시다. 일체가 다 내 잘못으로 도탄에 빠졌구나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내 잘못을 고칠까 하는 생각으로 천지신명님 앞에 피눈물을 흘려가며 애원하고 빌어봅시다.”
이는 무심행이 세상을 등지고 가야할 그때에 정신을 유체이탈을 시켜서 이 부분만은 필히 전해주고 가야겠다는 책임감에서 남긴 내용이다.
무심행 여사는 ‘일대 도인들이 깨달은 것을 당신 혼자만 알고 떠났구나! 좋은 말을 아무리 해줘도 세상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혼자만 알고 깨닫고 세상 떠났구나’ 그것마저도 알았다고 한다.
무심행 여사도 깨닫고 나서 3년을 찬물만 먹고 떠돌아다니면서 아무리 애원해도 세상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이 세상의 인연을 끊고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여 그 독한 청강수 한 숟가락 먹어도 목만 뜨끔했다고 한다.
몸 안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몸 밖으로 다 배출을 시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내의 몸 안에는 어떠한 독한물질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몸 안에 있는 나쁜 탁기가 모두 소멸되고 대우주의 기운과 소우주(사람)의 기운이 합일돼 같이 운행이 되었으니 우주원리를 다 아는 변화가 온 것이라고 한다.
덕천선생님에 의하면 무심행 여사는 성철스님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중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철조망을 치고 10년동안 ‘동구불출’(洞口不出) 하던 성철 스님을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무심행이 찾아갔다.
입구에서 아무리 사정을 해도 들여보내주지 않자 무심행은 직접 자기 손으로 철조망을 뜯고 들어가는데 안에서 벼락같이 내지르는 성철 스님의 “철망 뜯고 오는 놈 도둑놈? 어서 냉큼 나가지 못 할까?” 호통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무심행도 더욱 큰 소리로 “내발로 내가 가는데 철조망치고 못 들어오게 막는 놈은 더 도둑놈”하고 냅다 질렀다.
성철스님을 친견한 무심행은 자리에 앉자마자 “대체 스님을 만나 선지식하려고 온 사람을 왜 못 들어오게 막는 거요. 이유가 뭐요” 하며 문전박대한 이유를 따졌다.
성철스님은 무심행이 던진 말에 “그게 무슨 법문이고?” 되물었다. 그러자 또 한번 성철 스님을 향한 무심행의 날카로운 반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무심으로 한 말인데 스님은 그걸 법문으로 알았어요? 나는 글을 배운 적도 없고 일자무식이라 법문 같은 거 몰라요.”
무심행여사와 성철스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12년 세월이 흘러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있을 때 무심행 여사가 해인사로 성철 스님을 만나러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입구에서 그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안 되자 그는 마지막으로 ‘대구에서 무심행여사가 왔다고 성철스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버선발로 뛰어나온 것은 수행스님이 아닌 성철스님이었다. 성철스님은 무심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직접 손을 잡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삼천배를 하고 성철스님을 만나러 들어가도 채 5분도 안돼서 나오는데 두 시간이 돼도 한번 들어간 무심행여사는 나오지를 않았다.
수행스님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하도 궁금하고 이상해서 성철스님 방을 살짝 들여다보니까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무심행 여사가 방에서 나와 해인사를 떠날 때 성철스님은 손수 밖에 까지 나와 친절히 배웅해 주었다.
속인(俗人)은 물론 승려들조차도 잘 만나 주지 않는 성철스님이 그토록 반갑게 맞아주고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은 무심행 여사가 그만큼 보통 사람과 많이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찬물만 먹고도 3년을 버티고 청강수를 먹고도 죽지 않았다는 무심행 여사. 남편이 보는 앞에서 탐욕과 욕심의 연을 끊기 위해 돈을 불로 태워 없애 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고 무심으로 행하다 간 무심행의 삶이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의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무심행의 외침대로 병자를 볼 때에는 내가 곧 병자인 것 같이 보고, 거지를 볼 때에는 내가 곧 거지인 것 같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살기 좋고 따뜻한 사회로 변할 것이다.
덕천 선생님은 무심행 여사가 주고 간 기운을 원천삼아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인연 따라서 기 맥힌 것을 뚫어주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전국을 돌면서 기막힌 사람들의 막힌 기혈을 뚫어주는 덕천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우리사회 구석구석 막힌 곳도 시원하게 뻥 뚫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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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4년 09월26일 16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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