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144) 62세에 꿈을 가꾸는 소녀 할머니 박찬열
2003/12/18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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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144) 62세에 꿈을 가꾸는 소녀 할머니 박찬열
 
나이를 잊고 사는 62세 박찬열 할머니. 아직도 소녀의 감수성을 잃지 않고 시와 글을 쓰면서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다.

여중시절에 쓴 일기와 글 그리고 수놓은 손수건과 앞치마를 소중히 간직하고 30년전 입던 옷을 손바느질로 고쳐서 지금도 입고 다닌다.

강남 구민회관에서 기자를 만나던 날도 빨간색 코트를 입고 나왔다. 결혼하기 전에 입던 더블 코트를 고쳐서 입고 나온 것이다. 30년도 더 지난 옷이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뜯어 고쳐 입으니 새옷 못지 않게 깨끗하고 디자인이 깔끔하다.

대학 1학년때 연합서클에서 지금의 남편(조석영)을 만나 10년 열애 끝에 결혼하기 까지의 사연이 영화 러브스토리보다 더 감동적이다.

남편은 그를 만나던 첫날부터 줄곧 일기를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면서 그동안 써온 일기를 그에게 몽땅 건네 주었다. 결혼한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때의 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기와 편지가 박스로 가득하다.

잉크로 꼭꼭 눌러쓴 펜글씨. 편지와 일기장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누렇게 변했지만 젊은 청춘의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담은 깨알같은 글씨는 아직도 선명하고 뚜렷하다.

성우를 꿈꾸던 시절. MBC 아나운서로 있던 동갑내기 남편이 그에게 성우를 하던가 아니면 결혼을 하던가 양자 택일을 요구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성우의 꿈을 접고 29살에 남편을 택했다. MBC에서 32년을 근무한 남편은 99년 정년퇴직해서 현재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다.

두아들은 모두 결혼해서 따로 살고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초등학생 손녀를 둔 할머니지만 외모로는 아직도 젊은 엄마다.

사진촬영, 비디오촬영, 노래교실, 옷만들기 등 꾸준히 자기 개발을 해오고 있다. 지난 2월 15일에도 강남구민회관 대강당에서 '닐 사이먼의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했다. 그는 여기서 건강하고 힘찬 38세 어머니 케이트라는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중국 열하성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중국에서 큰 광산을 운영했다. 이름의 끝자는 그가 태어난 열하성의 첫 자를 땄다. 박찬열. 남자같은 이름때문인지 남동생을 얻었다.

못이룬 성우의 꿈. 결혼을 하고 세월은 흘러 자식을 다 키우고 56세가 되었을 때 성우학원을 찾아갔다. 성우는 연령에 제한이 없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다. 성우학원 8기. 그가 최고령이었음은 물론이다.

20대 성우지망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선생님들로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

▲     © 피플코리아
유인촌씨가 연극교실을 만들어서 주민들을 위한 무료교양강좌를 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들어가 연극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가 아닌가. 목소리가 좋으니 연극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극을 통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부부가 함께 양재동 성당에서 12년째 성가대로 있다. '예미루 성가대'. 함께 살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이들 부부가 그렇다. 두사람의 정서가 비슷하다. 지금도 시간을 내어 공연, 뮤지컬, 영화등을 같이 보러 다닌다.

하는 일이 많다. 유인촌 연극교실을 통해서 만난 주부들이 '강남 모자이크 주부극단'이라는 연극모임을 만들어 1년에 3차례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을 할 때마다 그가 비디오, 스냅사진을 촬영한다. 5년째 그렇게 해왔다.

결혼하고 나서 시집살이도 겪었지만 지금은 고부갈등 없이 서로 도와가면서 오손 도손 살고 있다. 결혼한 두아들도 이웃에 살면서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으니 4대가 더불어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에도 두아들 가족등 4대 아홉식구가 모두 만나서 미사를 드리고 함께 영화를 봤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요즘세상에 4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이 정겹고 보기 좋다.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다. 날씨가 춥다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녀가 할머니 옷을 입고 나간 것이다.

"오래된 옷을 잘 보관해서 입다 보니까 결혼하기 전에 할미가 입던 옷을 손녀가 입고 나갔어요. 요즘같이 유행이 빠른 시대에 며느리가 물려입고 손녀까지 입겠다고 우기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결혼전에 입던 옷과 구두, 신발까지 버리지 않고 아직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옷이 몸에 안맞으면 몇번이고 뜯어 고쳐서 입는다. 일종의 리모델링이라고나 할까. 박할머니의 옷장속에 도대체 무슨 옷이 들어있을지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중학교 음악책과 일기장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3년개근상의 부상으로 받은 놋그릇도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하고 있다. 부상으로 놋그릇을 주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모교 박물관이 완공되면 놋그릇을 기증할 생각이다.

99년 1월 강남 구민회관에서 공연한 '철부지'라는 환타스틱스 뮤지컬에서는 엘가로역을 맡았다. 극중에 참여도 하고 해설도 하면서 노래도 하는 남자역을 할머니인 그가 훌륭하게 해냈다.

극중에서 입은 턱시도는 마침 그가 간직하고 있던 옷이다. 해방전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모임있을 때 입던 턱시도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그옷을 입고나와 공연을 했다. 옛물건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모자이크 주부극단 회장을 하다가 한발 물러나 지금은 맏언니로 있다. 모두가 기대고 싶어하는 왕언니. 할머니보다는 젊은 주부들로부터 언니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그만큼 젊게 산다는 뜻이 아닐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나레이션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부부가 함께 나레이션을 하고 싶어 한다.

연극을 하면서 얻는 것이 많다. 비록 극중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단다. 나이를 초월해서 대본속의 인물을 분석 하고 서로 동화되어 두달이상 흠뻑 빠졌다가 무대에 올린다.

전업주부는 가정을 벗어나면 소속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통해 서로 조금씩 참고 양보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한작품을 열심히 하고 나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연극을 통해서 자신이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다.

세월을 잊고 사는 신데렐라 할머니. 뭔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꼭 하게 되더라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박찬열 할머니는 날마다 꿈을 가꾸면서 그렇게 세상을 젊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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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1/03/22 11: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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